2023.12.17. | 초안 작성 |
---|
이 글은 전문연구요원 3주 풀타임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틈틈이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쓰입니다.
누군가는 군대에서의 제식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나는 옛날부터 '피를 마시는 새'에 나오는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. '함께 걸을 수 있다는 건, 함께 싸울 수 있다는 뜻'이라는 내용이었는데, 나는 반대로 이해했다. 함께 걷고, 먹고, 잘 수 없는 군대는 함께 싸울 수도 없다.
3주간의 군 생활 중에 느낀 점은 분대원 15명만 모여도 혼자서는 매우 오래 걸릴 것 같은 일(e.g. 물 2.8t 나르기)을 빠르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. 고작 분대 단위에서도 그러한데, 소대, 중대, 대대를 넘어 연대, 그리고 사단 규모의 인간이 이런 협동을 해낼 수 있다면? 충분히 피라미드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
그런 동시에 수백만명의 인간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 총력전의 상황에서는 개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오직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훈련된 군대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.
그런데 군대의 문제는 그만큼 사람이 밀집되어 있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. 매일 삼시 세끼를 먹여야하고, 옷을 입혀야하고, 물도 마시고 사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.
이럴 바에야 차라리 로봇으로 대체하면 안 될까 싶지만... 애초에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서도 우주비행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예외적인 상황과 복합적인 문제를 충분히 빠른 속도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가벼운 기계가 아직 사람이기 때문이다.
군에서 나오는 부조리의 기원은 전부 다음 문제에서 파생된다; 너무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있고, 여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욕구들을 통제하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. 동시에 군대는 직접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용 예산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.
안보는 국가 체제의 유지 및 향후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. 3주만에 세뇌된 것일수도 있겠지만... 우리 나라의 군대는 항상 안보와 인권이라는 축으로 존재하는 trade-off line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. 결국 현실은 어느 정도 인권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겠지만...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현역 군인과 군 간부에 충분한 존경과 존중을 하는 것이 군대 밖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.